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케패스 전투 (문단 편집) ==== 4월 18~20일 ==== 결국 18일부터 연대급 작전으로 완전히 전환하면서 기갑연대가 총동원되기 시작한다. 08시부터 기갑연대 2대대(8중대)와 3대대(9중대) 병력이 안케패스 지역으로 대거 배치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연대급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앞서 1대대에 배속된 10중대, 11중대 병력은 3대대(최승철 중령)가 인수 받았고, 여기에 8중대까지 배속받아 3대대는 예하 4개 중대로 안케패스 19번 도로 개통작전을 개시하였다. 이번에 공격을 선봉이 된건 2대대 8중대(이종윤 대위)였다. 23시부터 8중대는 7부 능선을 따라 기동하게 되면서 작전이 시작된다. 그러나 19일에 중대장 및 1소대장 정종호 중위가 중상을 입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하여 철수하여 도로 경계를 담당했지만, 후임 중대장으로 임명된 정정상 대위가 적 부비트랩 교육중 신관이 터져 사망하였다. 이 과정에서 8중대는 투입된 150명중 사망자 7~8명[* 무전병 박원배의 시체를 발견 못함. 포로로 잡힌 후 자결 추정]에 부상 15명이 발생했다. 역시 주공을 하게 되어있던 3중대 역시 철수를 하고 1대대 2중대가 20일에 투입이 결정된다. 19일 공세의 주공을 맡은 기갑연대 1대대는 1연대 8중대(김용강 대위) 100명과 수색중대를 선두로 2중대를 예비중대로 하는 6작전을 펼치게 되지만 15시 30분에 8부능선까지 점령해놓고 적의 82mm 박격포의 대규모 화력공격에 1연대 8중대장 김용강 대위등 9명이 전사하고 12명이 부상을 입게되면서 공격이 돈좌하게 된다. 게다가 연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배속된 61포병대대 역시 적의 대대적인 대포병사격(82mm박격포로 200발의 공격을 받았다.) 105mm 주포 1문이 파괴되고 2문이 사용불능상태가 된다. 기갑연대는 예하 11개 중대[* 12중대는 독립 중대라 따로 주둔하고 있음] + 기갑중대를 몽땅 투입하고도 병력이 부족하여 26연대 2중대를 배속 받았다. 4월 20일에 소도산 인근 390고지에 60명을 투입 하였는데 12명이 전사, 부상 26명으로 중대 자체가 작살나고 중대장은 김용걸 대위 마저 부상을 입었다. 3일에 걸친 연대급 공격 역시 실패하게 된다. 이 당시 병력 부족이 너무 심하여 백마부대로 파월 특병을 받고 이동중인 장교와 병사들을 배안에서 강제로 끌어내 차출하였다. 그나마 사병들은 출동한 기갑연대 기지를 방어하는 병력으로 배치했으나, 신임 장교들은 그대로 638 고지에 헬기투입 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